시민의 의사를 담을 그릇이 못되는 시의원
간장종지보다 작은 그릇의 시의원
난가병에 빠진 시의원이 시장선거에 나오려고 하는 것 같다. 문제는 정치의 가장 큰 덕목인 “관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시의원이 시장선거에 나오겠다고 껄덕대(?)는 것을 보면서 김지하 시인의 오적(五賊)이 오버랩 되기에 그 위험성을 독자들에게 알린다.
14세기 까지 영국의 귀족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해야 귀족의 대접을 받았었다. 즉 상류사회에서는 불어를 할 줄 알아야 귀족취급을 받았었다. 그 이유는 프랑스어가“아름답다”는 이유였다.
영어에 대한 열등감을 갖고 있는 영국 귀족들에게 윌리엄 섹스피어가 나타나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명대사인 “to be or not to be(죽느냐 사느냐 그 것이 문제이다)”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고, 이 때부터 영국은 영어도 이렇게 아름다운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에 의해 윌리엄 섹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제3자의 관점에서 보면 14억 인도 인구를 포함하여 인도와 바꾸지 않는다는 표현이므로 비인간적이고 반인격적인 표현이지만 영국인들 입장에서는 자부심의 표현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영국인들의 자부심에 대해 프랑스는 “영국에 윌리엄 섹스피어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볼테르’가 있다“는 말로 볼테르를 프랑스의 자부심으로 여긴다.
볼테르는 현대사의 정치학을 정립하면서 “관용의 정치”를 논하게 되었고 관용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면서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할 수 없지만 당신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지켜주기 위해 죽을 때 까지 싸우겠다”는 말로 함의를 한 것이다.
볼테르의 관용의 정치는 오늘날 정당정치에서 채택하고 있는 “다원주의 정치”와 연결이 된다. 다원주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그 기초는 관용의 정치이다.
문제는 김포시 의원중에 시장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한 의원이 관용이라는 정치의 기본 조차도 모르면서 시장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하는 것이 문제이다.
기자는 질문을 하고 비판을 하는 것이 직업이다. 기자가 질문을 하는 경우 때로는 불편한 질문을 하기도 하고, 그 의원의 입장에서는 아픈곳을 건드리기도 하는 것이 기자이다.
기자가 불편한 질문을 하면 답변도 하지 않고, 기자가 보내는 카톡은 일부러 읽어 보지도 않고 애써 외면하는 시의원이 난가병에 빠져서 내년의 김포시장 후보로 출마를 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그 시의원에게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라고 권한다.
아니 시장선거에 나오지 않고 내년의 시의원 선거에 다시 나오겠다고 하더라도 이런 시의원은 김포시민들을 위해 공천을 주는 것 자체가 김포시민들에 대한 모독이고, 불행이 된다고 할 것이다.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자의 질문에 답변도 하지 않고, 기자가 보낸 카톡은 읽지도 않는 것은 관용의 정치와 배치되는 행동이다.
이런 시의원이 주제도 모르고 기자에게 5분발언 자료를 보낸다. 문제는 그 시의원이 5분발언에서 주절대는 내용이 본인이 작성한 것도 아니고 김포시 의회의 전문위원들이 작성해서 준 것을 5분 발언으로 주절댄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즉, 폼은 잡고 싶고 아는 것은 없으니 당연한 결과이고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기자가 그런 기사를 실어 준다면 결국 실력없는 시의원의 나팔 수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불편한 질문은 물론이고, 자기의 의견에 반대를 하는 사람들도 포용하는 것이 관용의 정치이다. 자기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바로 손절하는 것이 생산성을 고려하면 경제적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간장종지 만한 그릇으로 무슨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시장 후보로 나오겠다는 사람이 많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람만 9명이나 된다. 이번에는 난가? 하는 난가병에 빠졌다면 적어도 나를 반대를 하는 사람이든 나를 지지하는 사람이든 묻지 않고 불편하더라도 자기의 입장과 정치적 신념정도는 알릴줄 알아야 하고, 그 신념이나 입장이 잘못된 것이라면 당연히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 정치인의 숙명이다.
칭찬만 받고 싶은 유치원생이 시장이 되겠다고 껄떡대는 것을 칭찬해 줄 수 있는 기자 또는 시민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비판받기 싫으면 시의원도 그만두는 것이 김포시민들을 위해 타당한 결정이 된다. 간장종지보다 작은 그릇의 시의원에게 세비는 물론 의정활동비까지 꼬박꼬박 수령하는 것은 김포시민들 입장에서는 재앙이 되기 때문이다.
시의원이 된 것이 천부 권리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당신의 시의원의 지위도 헌법 제1조 제2항의 국민주권주의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잊지 마라. 당신은 세비 루팡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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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식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