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한 협상끝에 대화와 타협의 정치의 장 열어
자치단체의 목적은 정치적 다원주의
지방선거가 끝난지 2개월이 되어간다. 그 동안에 지방의회는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높았었다.
지방자치단체의 목적은 정치적 다원주의(多元主義)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지방의 공동관심사를 자율적으로 해결함과 동시에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이념 구현에 이바지 함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목적인 다원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종종 인용하는 말이 있다. 링컨의 케티스버그 연설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을 인용한다. of는 소유를 의미하는데 쉽게 말하면 주권재민론을 말한다.
by는 정치참여 주체를 말하는데 대의제 민주주의에 의한 직, 간접 주체를 의미한다. 즉,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헌법에서 보장된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 대통령선거 등이 이에 해당한다.
for는 정치에 있어서 공익 또는 공공선을 의미한다. the people은 정부는 국민을 연결하는 대표성, 반응성, 책임성을 주장하게 되고 시민은 깨어있는 능동적인 시민을 의미한다.
김포시청 앞에서 “시민들은 여야의 합의에 의한 원구성을 하라는 깨어 있는 시민들이 시위”를 목격하게 되었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본질은 정치적 평등에 의해 권력의 배분이 공공 또는 공공선을 위한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다원주의 국가는 국가의 중립성을 가정하면서 공정한 심판 또는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모든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쌓여있는 현안중에 조례의 제정과 폐지, 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구성의 합의가 없으니 답답하다는 시민들이 시위에 나서게 된 것이다.
정치는 4가지 관점이 있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4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는데 ① 통치기술로서의 정치 ② 공적업무로서의 정치 ③ 권력과 자원분배로서의 정치 ④ 타협과 합의로서의 정치가 정치의 4가지 관점이 된다.
통치기술로서의 정치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 단체와 관련되는 것, 정책과 관련되는 것이 있는데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은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분배를 주장하면서 권위는 권력이라는 정치의 통화화폐에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의한 정당성을 말하는 것이며 이에 의해 권력은 민주적 절차를 거친 강제력 있는 지배능력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이스턴에 의하면 지방자치단체의 선거에서 정당성이 부여된 선거절차에 의해 당선된 시의원은 권위가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원구성에 대한 협의를 이루지 못함으로 인해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그 함의(含意)가 정치에 대한 경멸적 이미지는 정치인들이 국가를 위해 헌신한다고 공언하면서도 자신만의 이기적 이득과 권력을 추구하는 위선자로 보여 지므로 통치기술로서 국가 또는 지방자치 단체는 시민이 원하는 정책(need)를 펼치는 것이 통치기술이라고 한다.
김포시 의회는 산적한 현안에 대한 아무런 대안이 없이 원구성이 공전하고 있는 것은 통치기술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되니 답답했는데 길고 지난(至難)한 협의에 의해 통치기술을 발휘한 것으로 보여진다.
공적업무로서의 정치는 공적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하고 공적업무로서의 정치는 정치영역과 비정치 역역으로 구분하며 의사결정 방식은 공적업무로서의 정치는 집단적, 집합적, 다수결의 방식(민주주의 방식)으로 결정하게 되는데 8월 3일에 의회를 개의하여 의장 및 상임위원장의 선출을 하겠다고 하니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권력과 자원분배로서의 정치에 대해 헤롤드 라스웰(Harold Dwight Lasswell)은 공적, 사적이든 인간의 모든 집단적인 사회적 활동의 중심에 정치가 존재한다고 주장을 한다.
권력과 자원의 분배에 있어서 누가 시의회의 의장이 반드시 되어야 하고, 어느 당이 반드시 3개의 상임위원회의 위원장자리를 가져야 한다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근거규정이 없으므로 표대결 또는 협의로 선출하겠다고 하니 권력과 자원분배에 있어서 통치기술이 발휘되었다고 할 것이다.
타협과 합의로서의 정치는 가장 중요한 통치기술 또는 정치기술에 해당한다. 정치의 본질은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의미한다. 다원주의의 의미가 권력의 폭은 넓고 그 권력은 균등한 분산을 의미하므로 규범적 당위성과 실증적 존재는 합의에 의해 광범위한 의견의 일치를 의미하는데 세부적으로는 의견의 불일치가 있을 수 있다.
타협과 합의로서 통치기술의 한계는 일당국가나 군부독재국가에는 적용 어렵다. 우리 김포시 의회가 일당체제도 아니고, 대한민국이 군부독재의 국가도 아니므로 타협과 합의로서 원구성을 못한다는 것은 결국 통치기술중 타협과 합의의 기술이 없는 것이 된다.
통치기술중 타협과 합의로서의 통치기술의 함축된 의미는 야만성에 의한 폭력보다는 문명화된 타협에 의한 정치로 해결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타협을 위한 합의를 김포시 의회가 자주적인 합의의 기대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지금이라도 시의원들의 합의에 의한 원구성이 타결되었으므로 타합과 합의의 통치기술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김포시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깨어있는 시민들도 무섭지만 침묵하는 시민들이 더 무섭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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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식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