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政策)만 있고 정치(政治)는 없다.

  • 김용식 기자
  • 발행 2023-10-10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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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政治)가 무엇인지?
정치(政治)라고 볼수 있는가?

정치(政治)가 무엇인지?

정치란 사회 각계각층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현상에 대해 그 갈등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정치라고 한다. 기자의 개똥철학에 의해 정의를 한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정치학의 권위가 인정되는 헤이우드(Andrew Heywood)의 정치에 대한 정의인 것이다.

갈등의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말은 정치인이라고 해서 모든 갈등을 언제나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장담을 하는 정치인이면 그는 정치인이 아니고 신(神)이기 때문이다.


▲ 갈무리 나무위키/ 앤드류 헤이우드/ 정치학자

그렇다. 신은 실수도 없고, 실패도 없다. 그래서 신(神)을 말할 때 “전지전능” 또는 “대자대비”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대중정당 정치는 당원들의 당비와 국가의 보조금에 의해 운영이 된다. 당원들의 방비를 받아서 운영하는 이유는 국가의 보조금만 받아서 운영하는 포괄정당은 당비를 내는 당원이 없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의 정치에 대한 참여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오늘날의 대중정당은 당원들의 당비와 국가의 보조금을 받아서 운영하는 형태의 대중정당 정치를 하게 된 것이다.

다양한 구성원들로 구성된 정당의 당원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대중정당에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당비를 지출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치에 참여하게 되고 이러한 이유로 정치의 참여도가 높아지고 결속력이 강화되고, 각계각층의 여론을 수렴할 수 있기 때문에 대중정당 정치의 모델이 된 것이다.

결국 정치는 오늘날에 있어서 현재까지는 대중정당 정치가 주류를 이루게 된 것이고 이러한 대중정당정치에 의한 다원주의(다양한 구성원들의 청치참여 방식)으로 변모하게 된것이다.

다원주의의 정치모델은 대중정당 정치로 민주주의적 반응성을 촉진하는 점에서 현재의 정당정치에 가장 부합하는 정치 모델이므로 정부를 감시하고 대의민주주의의 보완하는 의미가 있다.

다수결의 방식은 대부분 대중정당 정치에 적용되지만 대중정당 정치만으로는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지 못하므로 반성적 고려에서 다수의 다양한 소수집단들의 지배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소수자보호를 강조하는 다원주의 대중정당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소수자의 보호를 위한 다원주의가 이익집단의 정치로 보이는 것은 소수자 보호를 위한 가치보호는 민주주의를 보완 의미가 되기 때문에 이익집단의 정치참여는 정치적 교육의 의미가 있다고 로보트 달(Robert Alan Dahl)은 주장을 한다.

이러한 논리로 다원주의가 실현되고 있는지 검토(?)한번 해볼 필요가 있다.

광역기반시설에 대한 문제

정치인들이 아파트단지의 입주민 대표를 만나서 지하철 5호선의 연장을 설명하는 것, 상인연합회를 만나서 정책을 설명하는 것등은 다원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정치적 활동이다.


▲ 갈무리 국토교통부/ 광역교통은 연계되는 각 지방자치단체간의  중대한 이해관계가 발생하기 때문에 쉽게 협의가 안되는 문제점이 있다.                    
정당정치의 뿌리인 당원들은 국민의 힘의 당원이나 더불어민주당의 당원이나 한결같이 부정적인 발언을 한다. A당의 당원인 “甲씨는 정책의 설명을 위한 방법은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전제 되어야 하는데 같은 당의 당원들 조차 오리무중”이다는 말을 한다. “희망적인 말을 하지만 검증”이 불가능하다. 는 말을 한다.

또 “B당의 乙씨는 요즘의 지하철과 광역철도에 대한 발표는 투명하게 공개된 발표로 볼 수 없다”고 주장을 한다. 정책에 참여하는 과정이 없이 일방적인 의견과 주장만이 있고, “당원들의 의견이나 시민들에 대한 이해도” 등에 있어서 미흡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전 고위 공무원 정책담당 △△△는 “정책은 국민의 알권리와 당원들 또는 시민들의 국정참여 기회를 보장하고, 정책운영에 대한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정책의 진행과정에 있어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어떤 문제가 발생하여 진전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인지를 좀 더 투명하게 제공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를 한다.

비밀 정치가 아닌 대중의 이해를 구하고 대중과 함께 공감하면서 시민들이 함께 정책에 적극적인 참여를 할 수 있는 정책이 민주주의의 방식이며, 다원주의의 실현이 되기 때문이다.

정치(政治)라고 볼수 있는가?

기자가 오래전에 김포시민들 중에 60세 이상 시민은 김포시에 지하철 또는 광역철도가 개통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을수도 있다는 기사를 게재한 사실이 있다. 지금도 기자의 생각은 그 때와 다르지 않다.


▲ 갈무리 김포시청/ 정책에 따른 정치적 뒷 심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하철과 광역철도는 모두 광역기반 시설에 해당한다. 김포시는 경기도,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와 지하철과 광역도시철도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문제는 다른 도시인 인천광역시, 서울특별시, 경기도 등과 불가분적 관계가 있기 때문에 어떤 협의가 있었고, 어느 광역단체와는 협의가 아직 안되었기 때문에 언제까자 어떤 방식으로 협의를 할 예정이며, 협의과 완료되는 시점까지는 어느정도의 기간이 소요되고 그 결과 용역에 의해 언제부터 시행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알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지치단체간에 아무런 협의가 없는 상태에서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선전성 업적을 홍보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들의 소망 또는 소원을 기정사실처럼 발표하는 것이아닌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협상의 결과 또는 협의의 내용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다른 지방자치단체간에 아무런 협의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시민들에게 희망고문을 하는 것과 같다. 대중은 더 이상 우매하지 않다. 그런 대중을 우매하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우매한 것이다. 정책에 의한 정치는 없고 표를 겨냥한 홍보성 발표만 있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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