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힘은 "시민의 짐"이 되었다.

  • 김용식 기자
  • 발행 2020-09-10 09:14
  • 1,247
시민의 짐으로 전락되었다.
도덕과 법의 문제는 다르다.
법치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시민의 짐”으로 전락 되었다.

시민의 힘 김×× 은 문제를 제기 하는 점에 대해서 건건(件件)이 헛발질이고, 똥볼만 찬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점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묻는다. 알고 있다면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하고, 모르고 있다면 말 그대로 “시민의 짐”만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된다.

기자가 왜 이렇게 똥볼만 차고, 헛발질이 심한지에 대해 살펴보면 근본적으로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구글링을 하여 글을 쓰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알면서 글을 쓰면 그 글에서 사용하는 단어 등이 거칠게 표현이 되었어도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모르면서 소위 아는척 하면서 쓰는 글은 사용하는 단어에서 오류가 발생한다. 알면서 어떤 글을 쓴다면 글이 거칠어도 근거를 제시하면서 쓰게 된다. 근거는 법적, 또는 학문적 또는 경제적 단어 등을 사용하면서 제시를 하게된다.



▲ (펌) 위키백과 국부론의 아담스미스, 영국경제학자




먼저, 새터민에 대한 글에 대해서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경찰의 수사에 압력을 넣었고, 그 압력에 의해 “혐의 없음”이라는 처분을 받았다는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영국의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국부론을 주장하면서 시장경제는 국가가 개입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시장원리에 의해 가격이 형성이 되고, 경쟁력이 없는 집단은 시장에서 도태되게 된다“ 는 이론을 말한다.

김××에게 근본적으로 지식이 부족함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경제학의 이론을 사용하면 안되는거냐? 반문할 수 있다. 맞다.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상황에 가장 잘 맞는 경제학의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 즉, “카르텔”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보다 더 상황에 맞는 표현이다. 이러한 김××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참 애쓴다” “억지로 갖다 붙이느라고 아담스미스가 개고생한다”는 말을 한다.

어디서 배운 시민운동인지 기자도 궁금하다. 또 시민운동의 리더가 이렇게 지식이 짧은 경우도 본적이 없다. 대부분 자신의 지식이 부족한 경우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문제를 제기하는데, 김××의 경우에는 이러한 논리적 글 또는 법적근거를 제시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백화점의 상품처럼 공무원에 관한 법률을 늘어놓은 것을 근거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보여주기 위한 근거제시로 보여진다.)

이제 김××은 시민운동이라는 허울을 내려놓고 농사라도 지어라. 그 실력으로는 인구 50만을 바라보는 김포시에서 시민운동 운운 하는 것은 “시민의 짐”만 되기 때문이다.

도덕과 법의 문제는 다르다.

도덕의 문제와 법적인 문제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도덕의 문제는 법적문제와 충돌할 때는 언제나 “법적문제”가 우선한다. 법적으로 하자가 없을 때에는 더 이상 도덕의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없다.

도덕(道德)의 문제는 종교단체나 학교의 도덕 수업시간에 사람의 인성이 본시 악성을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그 인성을 종교적 신앙심과 도덕(윤리)시간에 그 악성을 희석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교육을 하는 것이고 이는 영국의 벤담과 밀이 윤리에 기초한 공리주의(功利主義)를 주장한 것이다.


▲ (펌) 위키백과 제라미 벤담, 공리주의자



그런데 김××은 공리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도덕의 문제로 글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공리주의는 “다수의 행복이 최대의 행복”이라고 주장을 한다. 이러한 공리주의는 벤담이 “질적 공리주의”만을 주장하였다는 것은 고교시절에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공리주의는 질적 공리주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양적인 공리주의도 있다.

즉, 공리주의도 오늘날에는 질적, 양적으로 충족되어야 진정한 공리주의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김××은 질적인 공리주의만을 주장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일전에 윤동주의 시를 인용하여 글을 올리는 것을 본적이 있다. 김××의 질적 공리주의만 주장을 한다면 “윤동주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마음의쾌락”과  “동동주를 마시면 심신이 편해진다. 심신의 쾌락" 은 결국에  ”윤동주와 동동주는 같다(쾌락)“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윤동주와 동동주는 같은가?

쾌락만 따지면 질적으로 윤동주와 동동주는 같은 쾌락이 되므로 이는 윤동주라는 사람의 인격과 동동주라는 물질과 동격이 되는 모순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도덕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한낱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도덕의 문제는 도덕으로 끝나야 하는 것이지 그 것을 확대해석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문제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점에 대한 지적을 하는 것이다.

법치주의(法治主義)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도덕의 문제로 세상을 치세(治世) 할 수 없다. 도덕으로 치세를 할 수 있었던 시절은 중국의 요순시대(堯舜時代) 이후에는 세계 어느 나라도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이룬적이 없다는 점은 실증주의(實證主義)에 의해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배우기 쉬운 한학을 근거로 아는 척을 하지 마시라, 당신의 실력은 지리산(智異山)에서 서당을 운영할 실력은 되는지 모르겠다.



▲ (펌) 위키백과 - 단원 김홍도의 서당 풍속화 



이러한 무모한 글에 의해 피해를 본 사람들은 지금 “당신을 고소”한다. 그 동안 견제 받지 않으면서 근거 없이 맘껏 떠들어 댄 것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 시민의 힘이 사단법인도 아니고, 비법인 사단도 아니므로 페이스북에 글을 쓰면서 모욕을 한 대로 처벌을 받으시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순차적으로 계속해서 재판이 끝날 때 마다 새로운 고소를 할 것이다.  그리고 반성을 하시라, 그 동안 견제 받지 않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는지



그리고 시청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사람들. 김××과 함께 행동하면서 글을 올렸던 사람, 김××이 올린글이나 김××과 함께 행동하면서 올린 글, 그러한 글에 배운 것 없어 보이는 댓글을 붙인 사람 모두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김××씨는 좀 더 공부에 힘쓰시라 그래도  법치주의에 의해 처벌은 당연히 받겠지만 공부는 필요한 것이다.
 

<저작권자 ⓒ 울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용식 기자 다른기사보기